마지막 날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성서의 예언

소개말 


성서 다니엘서에 의하면, 하느님의 백성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시대에 ‘공존’하는 두 가지 정치 세력이 계속 서로 견제/밀당을 할 것이라고 나와있다. (다니엘 11:40) 

그 둘은 북방왕과 남방왕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북방왕과 남방왕의 실체를 해석하는 방법은 학자들에 따라 달라진다.
이 글 역시 그런 다양한 해석 방법의 하나일 뿐이고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할 것이다.


그 소위 말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시기는 간단하게 말해 세 단계인데,

(1) 고대 이스라엘
(2) 예수가 살았던 로마 시대
(3) 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성서에서 말하듯, 하느님이 이 땅을 다스리지 않는 세상의 마지막 부분/시기)


이 (3)번에 대해서 좀 언급을 하자면, 근대에 서로 밀당하는 두 가지 강력한 정치적 세력은 

민주주의/자본주의 vs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참조 :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pabblestone&cid=1003258&fod_no=8)


다시 말해, 
미국(남방왕) vs 러시아,중국 등의 공산주의 세력(북방왕)이다.


그래서 성서에서 말하는 이 근현대 밀당싸움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좀 정리해보았다. 물론 본인은 역사와 관련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 글은 그냥 참고만 하길 바란다. 


[1] 공산주의의 발발

(0) 요약
(1) 산업혁명 발발
(2) 자본주의의 폐해와 공산주의의 필요성 부각
(3) 칼 마르크스의 등장
(4)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국가의 등장

[2] 근대 냉전

[3] 현대 냉전

[4] 결론

[1] 공산주의의 등장


(0)요약

농업 위주 사회 > 과학+산업 발달 > 산업 혁명 > 자본가 등장 > 인권 무시 > 노동자 아 힘들다! ㅠㅠ살려줘
>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 발달 > 칼 마르크스, 노동자들의 행복을 위해 열일+열공+사상 전파 > 혁명의 분위기 > 혁명 > 러시아를 필두로 중국 등 각국에서 공산주의 사회 건설 (노동자들인 프롤레타리아들이 지배계급인 부르주아보다 강한 사회를 꿈꾸며)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부패 및 타락으로 인해 이상적인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로 향하는 발전 중단 > 현재 우리가 보는 변질된 공산주의  

(1) 산업혁명 발발


“일반적으로 18세기 영국에서 시작이 되었고 그것이 가져온 인류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말한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18~19세기에 유럽과 북미로 확산되었다. 

용어 자체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Lecture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Eighteenth Century in England》라는 책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산업 혁명’ 명칭만으로는 갑작스럽게 어떤 기계나 기술의 발명으로 뿅하고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르네상스 이래 유럽의 전반적인 근대적 발전을 배경으로 서서히 진행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어떤 임계점을 기점으로 경제·사회적으로 급속도의 변화가 일어난 현상이다.

백여 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인 만큼 전개 과정과 시기에 따라 다시 나눌 수 있는데,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소비재와 경공업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는 1차 산업 혁명으로 분류되고, 19세기 중후반에 전기화학 등 중화학 공업이 시작된 것은 2차 산업혁명으로 분류된다.

모든 역사가들이 세계가 전근대랑 영 딴판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현대의 많은 성취와 문제들은 전부 이 산업 혁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쉽게 실감나지 않는 말이지만, 정말로 현대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사회 제도의 거의 모든 것이 산업 혁명 시기에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데, 15세기와 21세기를 비교하면 인구는 5억에서 70억으로 늘었고 전세계 총생산은 2500억 달러에서 60조 달러로 불어났다. 참고로 15세기 전세계 총생산액의 3배 되는 돈(1.3조 달러)이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잔고에 있다.”


……………..

미성년 노동자들은 탄광이나 공장에서 하루에 1시간도 쉬지 못 하고, 매일 10시간씩 건강을 해쳐가면서 일을 하였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쓰러지면 본인의 과실이었고 급여 또한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실상 노예노동이었다. 심하면 탄광에서 주 6일 동안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산업혁명을 겪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여서 19세기 후반 유럽 노동자들이 저 힘든 중노동을 주당 평균 50~60시간 했어야했다. 


유럽권의 산업 혁명 뿐 아니라 사실 각국의 산업화/근대화에선 독재정권,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이런 노동자의 고통이 거의 예외 없이 동반되었다. 

소련의 스탈린 개발독재는 워낙 유명하며,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메이지 유신, 한국의 제3공화국 등으로 근대화가 진행될 때는 국민들은 항상 힘들었다. 

유럽의 근대화에서도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나갔고, 일본은 근대화와 경제발전 시기에 환경오염과 산업재해가 빈번히 일어나서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같은 질병이 만연했고 한국의 경우에도 한강과 낙동강 등 주요 하천이 오염되면서 그냥 먹을수없는 수준이 되었고 정부와 기업이 수출제일주의라는 구호아래에서 노동착취를 방조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연간 3000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려야했다. 

이는 중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문제점으로 스모그도 이런 성장제일주의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리버 트위스트나 플랜더스의 개가 산업혁명 당시의 유럽의 사회상을 반영한 소설이었고, 카를 마르크스가 왜 떴는지 알만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동시대 인물인 허버트 조지 웰즈가 SF 소설인 타임머신(소설)에서 ‘엘로이’와 ‘몰록’의 설정을 각각 지배층과 하층 노동 계급의 후손으로 설정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 처참한 격차 수준을 볼 때,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같은 인류라고 보기도 힘들 지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전혀 무리가 아니었을 정도였다.

-출처 나무위키 ‘산업혁명’



(2) 자본주의의 폐해와 공산주의의 필요성 부각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다.” 는 사상이지만, 인류 역사상 실현된 적은 없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인데, 사실 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일종의 추상적인 대전제이지 구체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간파하는 데 주력했지 공상적 사회주의자처럼 이상적인 사회를 말한 적이 없다. 살짝 언급되는 내용(낮에는 일하면서 ~ 밤에는 비평가가 되기도 하는 구절)은 이것이 주가 아니며 언급하는 내용마저 상당히 추상적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공백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며, 그 이후 어떤 대안을 찾는지에 따라서 여러 분파로 갈리는 것이다. 일단 나라를 만든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이냐가 막막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구소련의 성립을 두고, ‘씨만 뿌리고 간 남자의 사생아’라고 평가한 책도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정리한 사회 발전 단계는 ‘원시공산주의(따지고 보면 이제껏 인류 사상 유일하게 실현된 공산사회다.) – 고대 노예사회 – 중세 봉건사회 – 근대 자본사회 – (프롤레타리아 독재사회) – 공산주의’ 이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상태가 바로 사회주의를 말하며 이는 공산주의로 진입하는 과도기다. 사회주의는 흔히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들의 모임인 ‘공산당’을 주축으로 구현되며 이것이 역사상 있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그러나 ‘공산당’이 중심이 된 프롤레타리아들의 독재인 사회주의에서 끝났을 뿐 최종적으로 독재 없이 모든 사회가 평등한 단계인 공산주의로 나아간 국가는 없었다. 

-출처 나무위키 ‘공산주의’


‘요약하자면, 마르크스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는 지구에서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 변질된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가 대부분이었는데, 그것들이 소위 말하는 오늘날의 공산주의 국가들이라는 것….’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공황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 예언했다.자본가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를 착취할수록 시장에서의 수요는 줄어든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자본가 입장에서 착취의 대상이지만, 시장에서는 소비자-즉 수요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오히려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많으므로 노동자의 구매력 감소는 자본가의 구매력 감소보다 자본주의에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 자본가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시장의 수요가 감소한다는 모순적 상황은 결국 경기의 악순환인 공황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착취라는 용어의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착취가 점점 심화된다는 표현이 자본가를 도덕적이지 않은 계층으로 비하한다고 해석하는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가 최대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임금을 가능한 선에서 낮게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소위 4차 산업 혁명이 발생하여 인간 노동자보다 효율적이고 저렴한 인공지능이 등장하게 되면 자본가가 인간을 고용하기보다 인공지능 기계를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결국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게 되고,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물건을 생산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구입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체적인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공산주의’


(3) 칼 마르크스의 등장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당시엔 프로이센) 트리어 브뤼켄로 644번지 이층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하인리히 마르크스는 유대인 집안이었으나 당시 프로이센 내 유대인 차별 경향 때문에 마르크스 출생 이전에 루터회로 개종한 이력이 있는 변호사로 자유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유주의적 사고를 많이 물려받았고, 특히 아버지가 17~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루소, 볼테르)에 관심이 있어서 그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또한 유대인 집안이었으나 마르크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으며, 집안이 개종했던 종교인 기독교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1830년 트리에에 위치한 김나지움에 입학했으며 라틴어, 희랍어, 작문, 수학 등에서 출중한 재능을 보였다. 또한 자유주의 성향의 스승들을 만나며 봉건주의와 전제정에 대한 반감을 키워갔다. 

또한 사회개혁의 의지도 있어서 1835년 졸업 논문 <직업 선택에 대한 한 젊은이의 고찰>을 써서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나지움 졸업 이후 마르크스는 법학 공부를 바라는 아버지에 뜻에 따라 트리어에서 멀지 않은 본 대학교에 진학하였다. 거기서 그는 법학에 열심히 몰두했지만 곧 종교, 철학, 문학, 거기에 술에까지 관심을 보이는 탓에 아버지는 그를 베를린 대학교 법학과로 전학시켰다.


…………..

시간이 흐를수록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원리를 정리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미 공산주의자 동맹의 대회에서 문답 형식의 글을 써서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에 대해 논한 적이 있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편이었다. 엥겔스는 문답 형식을 버리고 선언의 형식으로 공산주의의 신조에 대해 논해보자고 제안했고 마르크스는 이에 동의했다. 

마침 1847년 11월의 대회에서 참가자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마르크스가 강령 작성을 위탁 받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함께 선언 집필을 시작했다. 1847년 말부터 시작된 집필은 1848년 초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공산주의자들의 강령을 담은 <공산당 선언>(1848)이 출판됐다.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옹호했으며 그 전위로서 공산당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산 국가들이 폭력/과격 노선을 타는 것도 이것 때문인듯…) 

<참고로 1848년은 전유럽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유명한 해.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의 발단이 된 것이 이 때인건가? 

https://namu.wiki/w/1848%EB%85%84%20%ED%98%81%EB%AA%85 

(물론 프랑스와 독일의 혁명은 1848년 늦가을 쯤에는 모두 진압되고 실패하게 됨)



(4)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국가의 등장

러시아 혁명 이전 (1870-1900), 1860년대부터 1900년까지 공업 생산량이 7배 이상 증가. 광물, 철강, 운송, 제조 등에 있어서 서유럽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감. 

그러나 노동자 인권 착취가 심해져 계속 파업.. 정부는 계속 무시했으나 일만명이 파업하는 사태까지 발전.(1885년) 그러나 공장주들은 계속 편법을 저지르고 괴롭힘. 

정부에 대한 불신도 올라감. 이런 배경이 소련이 공산화되는데 일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1840년대 러시아에 들어온 공산주의는 당시 위와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 지식인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1869년 미하일 바쿠닌이 공산당 선언(뫍스가 1848년에 쓴 그거..)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자본주의를 분석한 유용한 경제이론으로 공산주의가 소개되면서 이와 같은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또한 러시아가 산업화되면서 농촌에서의 혁명을 주창한 인민주의에서 도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더욱 설득적으로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같은 관심을 반영하듯 1883년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의 주도하에 제네바에서 러시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 조직 ‘노동자 해방단’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이른바 ‘2단계 혁명론’을 주창하며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책을 러시아어로 번역, 보급하였다.

….

또한 이러한 서적의 유입은 국내의 공산주의 운동을 더욱 활성화시켜 1890년대에 이르면 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소규모 조직이 폭넓게 확산되면서 분열된 상태였던 인민주의는 몰락하고 공산주의가 혁명의 이념으로 완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전제정치를 펼치던 알렉산드르 3세가 죽고 그의 아들 니콜라이 2세가 새로운 차르로 즉위하였다. 

이렇게 러시아 전역에 혁명을 위한 바탕이 마련되어갈 무렵, 전제정치를 펼치던 알렉산드르 3세가 죽고 그의 아들 니콜라이 2세가 새로운 차르로 즉위하였다. 

노동자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은 그가 개혁을 실행하기를 원했지만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의 제국에 어떠한 변화가 오는 것도 희망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시대착오적인 반동정치를 계속 펼쳤다. 

1881년의 임시법을 계속 적용, 확대하여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고 교육에도 제한을 가했다. 이에 반발한 공산주의자들은 1895년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을 결성하였다. 

이 조직에는 블라디미르 레닌, 줄리어스 마르토프, 크룹스카야(레닌의 부인), 라드첸코, 포트레소프 등 훗날 혁명을 이끌 지도자들이 핵심 멤버로 참여했다. 그러나 투쟁 동맹은 그해 12월 당국에 의해 해산되었고 블라디미르 레닌은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1900년까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어쨌든 어째 저째 하다가 레닌에 의해서 소련 탄생. 

(참조 : https://namu.wiki/w/%EB%A0%88%EB%8B%8C%EC%A3%BC%EC%9D%98)

(구소련에서의 생활은 어땠는가? 
https://www.quora.com/What-was-it-like-to-live-in-Communist-Russia-USSR
러시아인이 영어로 썼지만 대충 번역기 돌려보면 된다.

https://www.quora.com/Was-life-in-the-USSR-good)



중국은 ? 

https://namu.wiki/w/%EC%A4%91%EA%B5%AD%20%EA%B3%B5%EC%82%B0%EB%8B%B9

기타 참조 : 

https://www.reddit.com/r/AskHistorians/comments/37uozj/what_are_the_end_goals_of_marxism/
https://namu.wiki/w/%ED%94%84%EB%A1%A4%EB%A0%88%ED%83%80%EB%A6%AC%EC%95%84#s-3


[2] 근대 냉전

참조
https://namu.wiki/w/%EB%83%89%EC%A0%84#s-5

[3] 현대 냉전

참조
https://namu.wiki/w/%EB%AF%B8%EB%9F%AC%EA%B4%80%EA%B3%84#s-3


[4] 결론
어쨌든 독재/전제 정치가 싫어서 어째 다같이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만든 것이 공산주의 이념인데, 결국 독재자들이 그 공산주의를 이용해서 진정한 공산 국가는 지금까지 태어난 적조차 없었다는 거….. 

힘있는 사람들에게 고통받던 나라들에서 이제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해서 공산국가가 된 건데, 결국 독재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 (과거 러시아 제국 내에서 억압받던 민중들….청나라는 모르겠다. 워낙 중국은 독재가 과거부터 판치던 나라라)

러시아 제국의 실체는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 제국 인구의 대부분(80~90%)이 문맹에 가난한 농노 상태였던 데다가 심지어 이 농노제가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러시아 귀족들은 재판권과 경찰권을 가지고 있어 농노들을 내키는 대로 처벌할 수 있었다. 물론 차르가 귀족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그 차르부터가 농노를 억압하니 잘 될 턱이 없었다. 게다가 국가의 모든 권력이 전제군주인 차르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럽처럼 자본주의의 활성화, 중산층의 대두, 과학혁명과 같은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였다.
출처 – 러시아 제국(나무위키) .. 고통받는 러시아 백성들 어쩔

성서 학자들은 이 냉전이 끝나기 전에 세계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 끝은 바로 러시아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 남은 참 종교를 침으로써 시작된다.

성서 학자들은 마지막 날 미국과 UN에서 전세계 종교를 칠 것이라고 알려주는데,

러시아 정교회랑 관련이 있는걸까?? 이미 국교가 되어버린 러시아 정교회가 무너진다는 것은 곧 러시아 자체가 무너진다는 뜻일테니까.. 

간단하게 순서로 보면 이렇다.

근대 냉전 > 현대 냉전 > 미국이랑 UN – “종교 다 죽어라!” > 러시아 – “뭐시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일부 사실, 일부 상상력+공상으로 씌어진 글입니다.

(추가로 당시 시대 배경을 더 알고 싶다면, 

제국주의, 카미카제, 백인의 의무 등과 같은 내용을 검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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